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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종교 연구

[종교 연구] 소위 '민족종교'에 대하여 - 1. 증산도에 대한 분석 시도(1)

by 취미와 문화 202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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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연재물을 읽기 전에

 1)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연구를 목적으로 한 연재물이다. 필자는 증산교인이 아니며, 계획하는 연구 주제가 증산계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되어 읽을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대단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여있는 상태가 아니다. 언제든 필자의 판단 아래 수정이 가해질 수 있으며, 연재가 규칙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언제든 연구가 중간에 끊길 수 있다.

 2) 필자는 증산교를 비롯한 종교들을 증오하지도 않고, 찬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증산계 종교는 연구대상일 뿐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증산교는 하나의 문화현상일 뿐이며, 1970년대 박 정권 이래 강성하여 꽤 많은 사회운동을 물밑에서 작업해온 집단으로 인식된다. 현재 글을 쓰는 필자의 입장에서 증산교는 민족의 구원, 즉 '개벽'을 추구하는 사회공동체인데, 이 개벽이라는 의식에 의해 소위 '민족종교'라고 혹자에게 칭해지는 그런 상태이다. 이런 식의 말에 너무 필자를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는 불교, 기독교 등을 비롯한 한국사회 내 주류 입장인 종교에 대해서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사이비'라는 말이 귀에 딱지에 앉을 정도로 들어 온 이들의 입장을 공감을 못할지언정, 최소한 이해는 시도하려는 이 글에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린다.

 3) 본 연구/연재의 목적은 종교의 교리가 합리적인지, 그 종교가 추구한 가치가 옳은 것인지 따지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그저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 교리 아래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며,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파악하는 방법을 추구한다. 그것이 해당 종교인의 입장에서 적대적인 입장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은 양해 바란다. 다만 한 가지의 믿음이 있다면, 증산교가 내포하고 있는 '모든 가치 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적 접근방식을 포용할 수 있다'는 그 정신 아래, 필자의 입장을 그러려니 받아주시길 바란다. 이 연재물은 비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의 입장일 뿐이다. 

 4) 본 글은 서론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딱히 없이, 먼저 필자가 종교에 가진 통념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그저 이 글은 생각의 길일 뿐이다. 이 글은 필자가 텍스트를 읽고, 판단되는 내용을 기록한 연구 기록물에 불과하며, 수용 여부는 독자의 몫이다. 필자는 부끄럽게도 [과학과 종교, 양자가 역할을 분담하는 이신론(理神論)]을 추구한다. 양쪽 영역을 혼동하는 자세는 '고대로의 회귀'라며 쉽게 공격받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논파할 만한 근거는 필자가 알기로는 나오지 않았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신론적 자세]

1. 인간의 사고의 한계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세계'란 무엇인가 묻는다고 했을 때, 세계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세계' 같이 넓은 범위의 개념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비교적 적은 대상에게도 한계는 적용된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상상할 수 있다는 것', '떠올릴 수 있다는 것' 등은 모두, '인간'이라는 대상의 모든 것에 대해 알 수는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인간이 사실로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최소한 시공간 때문이라도) 한정되어 있다. 그런 한계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대답할 수 없다. 설령 신이 무언가 자신의 완벽한 존재를 보증하는 사물이 있다고 해도, 인간은 그 완벽함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 없다. 

 

2. 종교 교리는 역사의 산물이다.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신의 존재를 종교 교리를 읽는다고 파악할 수는 없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 행위를 하는 것이 기만적임을, 벌써 가톨릭의 사죄를 통해 인류는 경험했다. 세계공동체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동양', '한민족'은 다르다는 식의 입장은 취할 수 없다. '한민족'이 신이 보증하는 사물이든 아니든, 우리는 그것이 신이 보증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만약 '한민족은 신이 보증하는 존재이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믿음일 뿐이지, 사실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 

 

3. '미신', '유사종교' 등의 용어는 사실이 아니다. 또한 '민족종교' 등의 용어도 사실이 아니다. 그저 해석의 영역을 임의로 평가하여 이름 붙였을 뿐이다. '미신', '민족' 등 평가를 다 떼어놓고 종교의 교리만을 볼 수 있으며, 해당 종교가 개인의 존재를 인정할 경우에, 그 교리는 개인에게 평가를 받을 자유가 있다. 다만 '해당 종교를 믿을 시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종류의 포교자의 말은 개인의 평가를 받는 가치의 영역을 뛰어넘어, 도리어 남들의 삶을 평가하려 나서는 것이다. '구원공동체에 들어오면 구원(복)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생각, '종교를 믿지 않으면 구원(복) 받을 수 없다'는 식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생각은 종교 내부자에게도, 외부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종교가 평가받는 입장을 넘어, 평가를 하는 주체로 나서는 순간, 그것은 권력을 갖게 되고, 정치의 영역으로 부상하게 된다. 신이 보증하는 '구원'을 인간이 규정하여 전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4. 인간이 '선한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버릴 경우, 인간은 기계와 같은 사물로 전락한다. 종교인에게 '선한 것'의 영역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하나는 신에 의한 선함, 또 다른 하나는 사회에서의 선함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은 국가가 다른 나라에게 공격을 당했을 시에, 결코 예수처럼 행동할 수 없다. 만일 정치인이 신적인 선함을 자처하면서 국가를 지속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신적인 선함을 따르지 않는 다른 국가에 의해 공격을 아직 받지 않았거나, '신에 의한 선함'을 '사회에서의 선함'에 침범시켰을 뿐이다. 그럴 경우 '예수', '부처', '한울' 등 다양한 '선함'의 상징들은 사회 권력의 상징물로 사용된 것이다. 

 

5. 일제 치하 식민지 상황에서 '유사종교'라고 지칭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런 한편 '민족주체 종교'로서 각종 반식민지 운동을 편 것은 교리에 의해 촉발된 '사회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교리 그 자체에 대한 영원함 및 해당 종교에서 신봉하는 신의 선함을 뒷받침해줄 수는 없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민족 정체성으로써 극복하기를 바라거나 명령한 주체는 신임을 증명할 수 없으며, 인간의 가치와 행동으로써 사건이 이루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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