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삼척 원주교구 관련 구술 - 김일동 전 삼척시장, <<삼척의 구술현대사 2>>
* 김일동 전 삼척시장(1938~) : 삼척중학교, 삼척공업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철학과 중퇴,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삼척상공회의소 회장(6~9대), 죽서문화제(현 정월대보름제) 위원장(8~12, 16~17회),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삼척시 공동대표, 제13대 국회의원, 통일민주당 사무부총장, 삼척시 민선시장(1~3대), 2002 삼척세계동굴박람회 조직위원장.
김일동 자서전도 존재하는 것 같다. [김일동, <<얼지않는 강>>]
* 채록자
1. 임관혁 : 관광학 박사, 전 가톨릭관동대학 교수, 지역공동체 네트워크 상임이사 강릉 영동대학교 교수
2. 구완회 : 관광학 박사, 현 (주)커뮤니티워크 대표
* 삼척은 가톨릭 원주교구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1970년대 초 지학순 원주교구 주교의 부임으로 본격적으로 원주교구가 운영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김지하, 장일순, 지학순이라는 세 인물과 여러 종교단체 및 시민단체, 농민, 광부, 상공인 등 다양한 계층들이 원주교구의 협동조합운동을 이끌어나갔다. 삼척에서도 역시 원주교구 사업의 일환으로서 많은 이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동 전 삼척시장의 구술회고록을 보면,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가 삼척에 왔던 일도 기록이 되어 있다. 정확히 시기는 언제인지는 맞추어보아야겠다. 어쨌건 주요 진술들을 정리해보도록 한다.
1. 지학순 주교가 생전에 삼척에 자주 놀러 왔다. 지학순 주교가 맹방 옆 사르트르 바오로 수녀원, 맹방 인근 지학순 주교의 개인 집이 있었다. 그 '개인 집'이라는 것이 어떤 성격인지는 모른다.
2. 김일동은 지학순 주교와 동행하여 궁촌 영은사 스님과 만나 대화하기도 하고, 삼화사에서 스님을 만나기도 했다. 김일동은 지학순 주교와의 인연을바탕으로 훗날 성요셉병원 원장을 맡았다. 김일동의 회상에 따르면, 병원의 원장으로서 운영하기보다는 병원의 정리하는 일을 맡았고, 지학순 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적극 지지하였다. "투쟁, 구속, 병고 등 일련의 활동을 하실 때 내가 함께 했으니까, 지학순 주교님의 아들이라고 신자들이 말할 정도"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3. 성내리 본당에서 일 년에 한두 번씩 진행하는 사목방문에서, 견진성사를 집행하러 지학순 주교가 방문하기도 했다. 견진성사는 영세 세례 이후 3~4년이 지났을 때 어른이 되는 과정을 뜻한다고 한다. 하나님에게 어른이 되었다고 알리는 의식이라고 이야기된다. 지학순 주교는 사목 방문 중에 각종 신자들의 문제, 종교문제, 교무상태 등 전반적인 것을 보고받았으며, 온 김에 휴가도 즐겼다. 성내리본당, 사직성당, 도계성당 역시 원주교구 소속으로 지학순 주교 관리 아래에 있었다. 가끔 지학순 주교가 신부들이 머무는 사제관에서 머물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지학순 주교를 김일동이 교회 사도회장으로서 모시고 다녔다.
4.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정부와의 원주교구의 대결 국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무렵에 김일동은 안동교구의 두봉 주교와, 지학순 주교가 삼척을 방문하여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지학순 주교가 민주화운동을 할 때 '붙어있었다'고 하나, 어떤 일을 한 것인지는 잘 알 수는 없다. 삼척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가톨릭의 활동이 있을 때, 성금운동을 추진하는 데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가 함께 삼척을 방문할 때에도 김일동이 또 안내자로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 역시 여러 절의 스님들과 소통을 했다고 한다.
김일동은 한때 구속되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이 탄원서를 써 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다. 지학순 주교에 대해서도 '교구장 10여년 하는 동안 계속 내가 모셨어'라고 할 정도로 깊이 지지했다. 김일동은 지학순 주교가 '당시 당뇨병을 가지고 있어 추기경에 탈락했다'(p.89)고 이야기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로 친했음을 보여준다.
5. 원주교구 신용협동조합 사업은 삼척 내에서는 태백이 먼저 시작했다. 삼척 신용협동조합 초대회장(이사장)의 이름은 홍종기 시몬이다. 천주교에서 500만원 규모의 신용협동조합 사업이 운영되었다고 김일동은 회고한다. 삼척에 성요셉의원은 성내리 본당 그 옆에 성요셉의원이 삼척 내 의료 복지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일동은 당시 지학순 주교와의 인연을 계기로 3년간 성요셉의원의 병원장으로 있었는데, 호산에 민병관 면장의 아내의 십이지장궤양을 3년간 무료로 치료를 해 주었다고 증언한다. 성요셉의원에 병실이 마땅치 않아 그 인근에 여관, 여인숙이 3~4개 정도 있어 병원일을 보던 사람들이 자주 묵었다고 한다.
6. 양대섭 신부라는 인물은 김일동 등이 민주화 성금 모으기 활동을 할 때에 지원을 했던 '원주교구회 총대리신부'라고 한다. 총대리신부란 사무국장 격의 총신부를 말한다고 한다. 양대섭 신부는 민주화 자금을 투옥된 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성금을 모금하는 창구 격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양대섭 신부 다음으로는 이영섭이라는 신부가 그 뒤를 이어 총대리신부를 했다. 이영섭 신부는 삼척 성내리 본당에 5년 정도 머물렀다고 한다. 최창규 신부라는 사람은 삼척 성내리 본당 주임신부로, 김일동과 함께 활동을 했으나 주로 참여자의 역할이었지, 무언가를 주도하여 기획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최창규 신부는 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타입이었다.
도계 신부에 조응환 신부라는 사람도 있었다. 조응환 신부는 도계 광산지구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 출처 : 김일동 편, <<삼척의 구술현대사 2>>, 삼척시립박물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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