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수능이 정말 코앞입니다, 코앞! 시간이 정말 감쪽같이 갑니다.
개인적으로, 수능 잘 보라는 응원은 부담되기만 합니다. 그냥 우리 기분전환이나 합시다. 수능 잘 보는 법 같은 건 지금 시점에는 별 도움 안 됩니다. 책이나 한 번 들여다보는 게 차라리 낫지.
어쨌건 내가 수능 시험 볼 때/본 후 방해요인들 top3! 수능 시험 시간에, 쉬는 시간에 제가 겪은 일들을 간단히 적어보겠습니다. 물론 너무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에요.
1. 잡생각
저는 1교시 국어를 볼 때에 패닉에 빠졌습니다. 1번부터 기출과 전혀 다른 문제유형이 나왔지요. 그래서 당황한 나머지, 다음 장으로 곧바로 넘어갔습니다. 갑자기 시험 도중에 ‘국어가 망했다, 어떻게 하지? 진짜 x됐다. X발.’ 온갖 잡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그 해에 신채호의 ‘아와 비아와의 투쟁’이 지문으로 나왔고, 본래 자신없던 비문학이 시험 당시에는 완전히 전멸당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패닉에 빠진 나머지 그나마 자신있던 문학 파트도 완전 죽쒔고, 결과적으로는 국어 4등급을 맞고 말았습니다. 가채점 전에는 5등급 나온 줄 알았어요. 그나마 수시로 다른 과목에서 최저등급 맞춰 갔지만요.
여러분, 수능시험 중에 패닉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물론 긴장 상태 덕에 날쌔게 움직이긴 했지만, 날쌔게 움직인 보람이 없었습니다. 불수능인 해에는 패닉에 빠지기 쉽지만, 마음을 편히 먹고 보세요. 어차피 크게 긴장해봤자 능력 이상의 점수는 나오지 않습니다. 되돌아보니, 저는 자기소개서 쓰느라 수능특강 국어영역은 잘 들여다보지도 않았죠.
그리고 각 시험 시간이 끝날 때마다 다들 “망했다”며 한 마디씩 합니다. 그건 어느 정도 양호합니다. 문제는 나는 어려웠는데 남들은 쉬웠다고 하면 현장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 말에 신경쓰지 마세요. 여러분이 푼 문제는 쉬운 문제도 어려운 문제도 아닙니다. 아는 문제와 모르는 문제만 있을 뿐이고, 모르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설령 익숙한 공식을 쓰는 문제가 있다고 해도 결국 출제의도를 못 읽으면 못 풉니다. 수능시험은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인 만큼, 지문에 있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 내게 익숙지 않은 필기구나 환경
전날 밤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필기구도 제대로 안 챙기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샤프가 아니라 연필을 챙겨 필통에 넣어갔죠. 연필이 초등학생 때 쓰던 거라 그런지, 지문을 읽을 때 싸악- 소리가 너무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소리는 크지만 지문은 읽히지 않는 게, 상황을 더 급박하고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국어 시간이 끝나고 시험장에서 받은 샤프를 썼는데, 자신있던 수리영역이 너무 쉽게 나온 바람에 허무했죠.
3. 좌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수능 볼 때는 영어영역은 수능 연계교재에서 엄청난 비율로 나왔습니다. 달달 외우기만 하면 2-3등급은 간단히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불행히도 저는 연계교재 영어 지문을 분석하지 않았죠. 겨우 3등급 맞은 꼴입니다.
시험 중간에든 시험이 끝난 후에든 엄청난 좌절에 빠졌습니다. 누구도 제가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에 위로해주지 않았죠. 친구들은 ‘내가 더 망쳤어’라며 이상한 경쟁을 하고, 가족들은 그냥 일찍 공무원 시험을 치라고 해서 공무원 교재를 샀죠. 울면서 공무원 교재를 샀고, 어디서도 충분한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버틸 수가 없었어요.
국어영역은 너무너무 못 봐서 최저등급도 못 맞췄다며, 알고보니 사실 지원 가능했던 대학의 면접도 가지 않았죠. 그 때 느낀 좌절이 그 시절 전체를 어두컴컴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2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는데, 친구들을 보면 인생의 안정과 행복은 수능성적과는 큰 관련성이 없습니다. 소방관을 꿈꾸던 친구는 그저 소방 관련 시험을 공부해서 소방관이 되었고, 누구는 벌써 장사에 뛰어들었죠.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 시절 담임 선생님도 몇 년에 걸친 실패를 맛 보신 분이었죠.
아니, 반대로 만약 수능을 잘 봐서 대학을 잘 갔다고 칩시다. 뭐든 천국이 열릴까요? 대학전공은 어디를 선택하든 2-3학년 쯤에 단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지못한 대학 역시,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이기에 아름답죠.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고3이라면 완전 벼랑끝에 몰려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곧 벼랑에서 떨어져 좌절할 수 있겠죠. 겨우 시험 하나이긴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곤 하죠.
하지만 여러분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겁니다! 국어를 망쳐도, 수학을 망쳐도, 영어를 망쳐도 여러분들 인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학벌의 혜택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고 좌절하는 건 사치입니다. 여러분들이 보는 수능 시험은,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험”이 아니라, “내가 더 많은 혜택을 가져가겠다”는 경쟁인 것이죠. 내가 무언가 얻지 못했으면 그건 그대로 좋습니다. 우승하지 못한 자는 패배자가 아니라, 그저 ‘참가자’일 뿐입니다.
제가 겪은 강사들은 모두 “힘들다 찡찡대지 마라, 부모님이 더 힘들다, 부모님께 보상해야 한다 ...” 어쩌구 정신교육이랍시고 떠들어댔지만, 그 사람들이 여러분 인생에 대해 뭘 압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 과목에서 수능수준 조금 넘는 지식 밖에 없는 천치들이고 사업가일 뿐입니다! 인생 선배인 양, 진실된 선생님인 양 몰아붙이는 그 인간들은 여러분 인생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저 여러분은 수능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열매를 따면 그만인 겁니다! 취업도 제대로 못 시켜주는 이 망할 나라에서 그나마 좀 편하게 먹고 살자는 것이지요.
여러분, 고3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미친 분량의 교육을 받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어요. 그 때로 다시 돌아가라면 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자신을 위해 시험장에 들어갈 때, 그리고 쉬는 시간에, 그리고 시험장을 나올 때 한 번씩 자신을 토닥여주세요. 여러분, 청춘입니다! 좌절은 시간낭비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겐 잃어버릴 것이 없습니다! 미래의 시간을 벌써 걱정하는 건 쓸데없는 짓입니다!
마음 속으로 외칩니다. X발!!! X나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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