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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 고대사

2. 청동기 시대

by 취미와 문화 2020.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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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말 그대로 청동으로 된 물품을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입니다. 청동기 시대라고 해서 석기를 내다 버린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석기들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죠. 다만 앞서 말한 석기시대들보다 더욱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고, 곡식을 쌓아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즉, '어떻게 많이 생산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더욱 구체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누가 분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될 것입니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여러분들은 생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분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물론 이 문제의 답은 아직까지 내려지지 못했고, '둘 다 중요하다'고 결론 지을 뿐입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여러분들은 생산과 분배라는 것을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있다면 어느 정도 범위까지? 집에서의 여러분들의 권력은 어느정도이고, 여러분들 동아리에서 권력은 어느 정도이며, 국가라는 범위 내에서 여러분의 권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청동기 시대에 비로소 사유재산 개념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산이 생기는 사람이 생기는 반면, 재산이 없어 비굴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을 볼 때 '그렇게 누릴 만한 삶을 살았어'라고 생각하고, 돈이 없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누군가는 미친 생각을 하지만, 재벌 2세의 도전정신이나 능력을 엄청나게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실제 존재하고, 청년들에게 노력문제만 들이미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 근대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많이들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에 정당한 근거가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 자책을 하는 것이 그런 이유일 겁니다. 이유없는 고통을 사람은 그리 오랫동안 견딜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그 고통을 아예 회피해버리고 현실도피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동기 시대에 권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일단 청동기 시대에 만드는 데에 당시로서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한 청동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권력자였을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유물은 바로 '비파형 동검'과 '거친무늬 거울' 등이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은 악기인 '비파'를 닮아서 그리 이름을 지었고요, 거친무늬 거울은 거울답지 않게 거칠게 다양한 무늬가 있어 그리 이름을 지었을 겁니다. 거울이 자기 얼굴 보는 데에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거죠. 아마도 이 거울은 태양빛을 반사시켜 신비로움을 연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후광효과라고나 할까요? 이런 데에 멋있는 동검까지 내보이면 권위가 장난이 아니겠지요.

  이런 청동기 시대에 '군장(족장)'이라는 권력자가 등장합니다. 이 군장은 제사와 정치를 함께 주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군장에게 '네가 뭘 근거로 내게 이래라 저래라' 묻는다면, 이 군장은 '내가 하늘의 자손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단군신화에서도 하늘의 아들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호랑이와 곰에게 쑥과 마늘을 먹으면 사람 만들어준다잖아요? 

  이런 대단한 사람이 죽으면 무덤도 거대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만약 하늘의 아들인 권력자가 죽었을 때 그냥 무시해버리면, 하늘이 분노해서 천벌을 내릴지도 모를 노릇이죠. 그래서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청동기 시대에 고인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평한 돌을 상자모양으로 두른 돌널무덤 같은 것도 출토가 되었죠. 

  정리하자면 이 청동기 시대에는 사유재산과 계급이 있고, 그 계급의 정점에 있는 군장이 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군장은 자기자신을 하늘의 자손으로 여긴 것이죠. 그리고 이 권력자들은 죽으면 대우를 해 줘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고인돌이라는 것이죠.

  이번에는 청동기 시대의 보통 농사짓는 현장으로 가 볼까요? 청동기 시대에 청동제품은 매우 귀하다고 했지요? 청동기 시대에는 조금 더 세련된 돌 농기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반달돌칼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반달돌칼을 보면 구멍이 두 개 뚫려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 끈을 묶어 손을 고정한 것 같습니다. 반달모양인 것을 보아서는 벼 같은 곡식을 수확한 것 같죠? 실제로 청동기 시대에는 일부 지역에서는 벼농사를 실시한 흔적이 보입니다. 수확한 곡식은 '민무늬토기', 혹은 바닥이 평평하고 손잡이 부분이 있는 '미송리식 토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거주지는 신석기에 구덩이를 파서 지붕을 얹은 움집에서, 조금 더 구덩이가 얕아지게 됩니다. 이걸 표현하기를 '움집이 지상가옥화 되었다'고 표현하지요.

  다시 정리하자면, 농사에는 반달돌칼을 사용했고, 벼농사도 이 때에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더라 이겁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와 미송리식 토기가 사용되더라. 그리고 집은 지상가옥화되었더라.

 

 

   

* 참고자료

2015 수능특강 한국사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05_0060_0010_0020&whereStr=%40where+%7B+IDX_TITLE%28HASALL%7C%27%EA%B1%B0%EC%B9%9C%EB%AC%B4%EB%8A%AC+%EA%B1%B0%EC%9A%B8%27%7C100000%7C0%29+or+IDX_CONTENT%28HASALL%7C%27%EA%B1%B0%EC%B9%9C%EB%AC%B4%EB%8A%AC+%EA%B1%B0%EC%9A%B8%27%7C100%7C0%29+or+IDX_ALL%28HASALL%7C%27%EA%B1%B0%EC%B9%9C%EB%AC%B4%EB%8A%AC+%EA%B1%B0%EC%9A%B8%27%7C1%7C0%29+%7D

 

우리역사넷

신광섭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기원전 10세기경 중국 동북 지방에서 청동 기로 도구와 무기를 만들어 쓰던 주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토착 주민과 동화되면서 성립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

contents.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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