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조선과 철기 유입
철기시대는 말 그대로 철이 등장한 시대입니다. 철이라는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어디선가 계속 사용되고 있었겠죠? 어떤 선생님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등장했을 때, 비로소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이 철기 시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해석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느냐의 문제이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대개 만주와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기원전 4~3세기 무렵에 중국 연나라에서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 때 철을 다루는 기술자들이 들어온 것이겠죠. 철 기술자가 생기니, 날쌔고 강한 강철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드라마 주몽의 모팔모가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강철검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철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은 세형 동검입니다.
아무리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어떻다 해도, 결국 아직도 철기 시대입니다. 철기 시대이자 문명의 시대에 들어간 것이죠. 문명이란 '도시'와 '문자'가 있으면 문명이라고 하곤 하는데, 학자마다 그 정의는 다릅니다. 어쨌건 문자기록에 고조선이 등장한 이상 이제는 역사시대에 들어간 것입니다. 비록 역사서 조금밖에 등장하지 않는 고조선이긴 하지만, 그 만큼 확실한 권력체가 존재했다는 것이고, 그 권력체는 나름대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정확히는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는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단군할아버지가 고조선을 세웠다고 하지요? 그런데 고조선 사람들이 '우리는 고조선(古朝鮮)'이야!라고 했을까요? 만약 당시 사람들은 그저 '조선'이라고 불렀을 겁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조선을 양반들의 나라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고 부른 것이죠. 물론 고조선이라는 용어는 중간부터 단군 계통이 끊기고 위만이라는 사람이 들어오기 이전을 구분하여 부르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단군'은 과연 사람 이름일까요? 성은 단이요, 이름은 군인가요? 우리가 생각하는 단군할아버지가 무척이나 오래 살았던 게 아니라, '단군'이라는 지도자가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일단 단군의 고조선은 청동기문화에서 시작하고, 철기문화에서 끝납니다. 이렇게 건국 시점은 청동기 시대로 보는 입장이 현재 주류로 보입니다.
한편 단군신화를 생각해보면 일단 풍백, 운사, 우사 등 자연과 관련된 환웅의 부하가 있었죠. 자연물을 상징하는 이름들이니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 같지요. 그리고 부하가 있고, 그 아래에 삼천의 무리가 있다고 하니 계급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곰(부족)과 결합한 환웅의 아들은 '단군'입니다. 단군은 '탱그리' 같이 '하늘'을 뜻하는 유목민족의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여러모로 단군이라는 말은 앞 시간에 보았던 '군장'의 개념에 가까워보입니다. 그리고 왕검은 정치의 수장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단군왕검이란 제정일치의 지도자입니다. 당시 농경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계급이 발생했으며, 제정일치의 지배자인 단군왕검이 출현한 것이 바로, 단군신화의 이야기인 것이죠.
철을 만드는 기술은 어쨌건 기원전 4~3세기 중국 연나라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죠? 아마 중국 연나라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서로 자극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기원전 3세기, 그러니까 기원전 2000년대에는 부왕, 준왕 등이 왕위를 세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군의 조선, 즉 단군조선도 언젠가 그 계통이 끊겼죠. 그런데 그 시점에 대해 많은 역사상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은나라 말 주나라 초 기원전 1100년 경인가, 기자라는 이가 중국에서 조선을 다스리는 제후로 봉해졌다는 기사들이 전해져왔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사기>>, <<한서>>에서 기자에 대해 그리고 있죠. 아니, 그렇게 큰 고조선 땅이 그렇게 중국 땅이 되어버렸단 말인가요? 이 기사들은 당연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21세기 들어 다양하게 나오는 중입니다. 예를 들어 서의식 선생님은 본래 예맥족의 언어로서 '칸들이 추대한 대왕'을 뜻하는 일반명사 '기자'와 은나라에서 동쪽으로 왔다고 전해지는 '기자'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자조선이 고조선 전체를 지배했다는 논리에 대항하는 다양한 논리들이 있습니다. 그 신빙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자조선은 한국사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훗날 위만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왕위를 세습하여 국가를 운영하던 준왕을 몰아내고 조선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위만은 조선에 들어와서는 철기문화를 더욱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되었고, 주로 한반도 남부와 중국의 한나라 사이에서 교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강성해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서쪽에 중국에서는 한나라가 들어섰습니다. 결국 기원전 108년에 한 무제의 침략을 받아 멸망당하게 되고, 한나라가 한반도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게 됩니다. 특히 평양 지역에 한사군이 설치되었죠.
'군현제'라는 것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봉건제'와 어느 정도 반대되는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식 봉건제는 아들들에게 봉토를 나누어주고, 아들들은 아버지께 충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군현제는 왕이 관리를 '군', '현' 단위에 배치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봉건제는 가족경영이고, 군현제는 크게 보아 왕 중심의 중앙집권제죠. 물론 한나라가 완전히 순수한 군현제를 실시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한반도에 중국 황제가 다스리는 땅이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한반도 국가들에 적잖은 위협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큰 자극을 주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고조선에는 법률로 전해지는 것이 '8조법'이 있죠. 사람은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 곡식으로 배상하고, 도둑은 노비로 삼는 등의 법이죠. 어쨌건 여기에도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권력과 계급이 존재하고, 노비가 존재하며, 도둑을 처벌하는 것을 보아 사유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고조선의 8조법이 한군현이 들어오고 나서 60여 조로 세분화되었다는 것입니다.
* 참고자료
2015 수능특강 한국사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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