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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i 활용법(1) - 나만의 문제집 만들기 안녕하세요. ebsi 활용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요새는 온라인 강의 때문에 ebsi 홈페이지를 더더욱 많이 이용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ebsi를 한창 들어갈 때에 사용했던 방법을 하나씩 소개해보려 합니다. 사실 공부를 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 일은 매우 귀찮지요. 그래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공부한답시고 인터넷 강의를 듣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기출문제 풀이를 할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편한 자세로 기출문제 풀이도 하면서 시험공부도 할 수 있는 ebsi 시스템이 있습니다. 바로 [나만의 문제집 만들기] 메뉴입니다. 1. ebsi를 접속합니다. 2. 상단 메뉴에서 [기출문제] 메뉴를 클릭합니다. 귀찮은 분들은 이 링크 타고 가시면 됩니다. www.ebsi.co.kr.. 2020. 12. 16.
[강독] 1. 80년대 사회운동과 사회구성체논쟁 - 조희연(2) 야학운동비판 3. (1) "학생들이 민중운동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야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민중교육을 시도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 역사는 매우 짧다. 그러나 그 사이의 우리의 역사는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현재는 운동이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으며 운동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방책,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즉 운동의 질적 비약을 요구하고 있는 때인 것이다. 이 요구는 지금으로서는 과학적 인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정확한 이론에 의한 실천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쳊계적인 분석과 종합은 아직 미약하다. 그것은 수공업적인 운동현실에 원인이 있지만, 우리의 학습이 아직도 우리의 무기가 되고 있지 못함을 말해준다. ... 지금, 여태까지의 경험적 축적을 이론적으로 분석해 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리라고 생.. 2020. 12. 15.
[강독] 1. 80년대 사회운동과 사회구성체논쟁 - 조희연(1) [강독] 1. 80년대 사회운동과 사회구성체논쟁 - 조희연(1) 1. 80년대 당시의 조희연 교수는 한국사회구성체 논쟁 관련 서적편찬에 참여했다. 이 당시에 어떤 행보를 벌였다는 것을 굳이 오늘날 끌어와서 그는 좌파, 마르크스 주의자라고 공격하는 것은 그리 발전적이지 못하다. 당시 사회투쟁이 맑스주의를 매개로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 연대가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그 행보가 현재의 조희연씨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당시 반정부 수단이 평화적인 방법이 가능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과연 그렇다!라고 쉽게 대답할 수는 없을 테다. 애초에 전두환 군사정부 시절의 민주화운동의 진형은 매우 복잡해지고 있었으며,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도 온건 노선을 주장한 이들 간에도 '변절'이라고 할 만한 행보를 벌인 이들이 간간히 보인.. 2020. 12. 15.
필수 한국사 대학에 반영되는 정도 [한국사 대학에 반영되는 정도] 입시에는 EBSi를 많이 참고해야 되겠죠. 많이 들어가 봅시다. 여러 입시정보가 들어가 있습니다. 정시 한국사 환산점수 가/감점 만점 부여 등급 1등급 : 동국대, 성신여대, 숭실대 3등급 : 경희대 인문대학, 고려대 인문대학, 단국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대, 서울여대, 세종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인문대학, 한국외대 인문대학, 한양대 인문대학, 홍익대 4등급 : 가톨릭대 인문대학, 건국대, 경희대 자연과학, 고려대 자연과학, 광운대, 국민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상명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아주대, 연세대, 이화여대 자연과학, 인하대 인문대학, 중앙대, 한국항공대, 한양대 자연과학, 한양대 E 5등급 : 가톨릭대 자연과학, 인하대 자연과학 6등급 : 명지.. 2020. 12. 15.
삼성 이병철 자서전 <<호암자전>> 전문 보는 법 삼성 이병철 자서전 전문 보는 법 안녕하세요. 취미와 문화입니다. 한국 현대사 관련하여 서적들을 수집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겠지요. 그 중에서 삼성을 세운 고 이병철씨의 자서전을 호암재단에서 볼 수 있었는데,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역시나 구글 창에 호암재단을 검색합니다. 호암재단에 들어가보면, 기업이미지에 맞게 깔끔하게 꾸며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호암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우측 상단에 메뉴 버튼이 있습니다. 메뉴를 클릭하면 하위 메뉴가 나타나지요. 그 중에 [호암 이병철] - [호암서적]을 선택합니다. 해당 메뉴에 들어가면 호암자전 개정본 전문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기업 홍보 차원에서 올려놓은 것이겠지만, E-Book으로 전문을 올려놓아 역사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일입니다. 어쨌건 이렇게.. 2020. 12. 15.
[종교 연구] 소위 '민족종교'에 대하여 - 1. 증산도에 대한 분석 시도(2) [교리에 대한 접근] 6. 증산도의 교리는 유교, 불교, 노자, 장자, 기독교의 신의 당위를 모두 포괄하고자 한다.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으니 이러하니라.(증산도 1:1.9)] 상제라는 존재는 현세를 초월한 존재로서, '상제가 있음'까지만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로 전제된다. 증산도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상제라는 존재가 굳이 '증산도 식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최소한 증산도에 심취했던 김지하는 증산도가 한민족 중심의 종교 통합의 매개체라고 인식했으며, 굳이 기독교적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구분하려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증산도 교인들의 인식과 지향에 대해서 충분한 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김지.. 2020. 12. 14.
[종교 연구] 소위 '민족종교'에 대하여 - 1. 증산도에 대한 분석 시도(1) * 본 연재물을 읽기 전에 1)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연구를 목적으로 한 연재물이다. 필자는 증산교인이 아니며, 계획하는 연구 주제가 증산계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되어 읽을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대단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여있는 상태가 아니다. 언제든 필자의 판단 아래 수정이 가해질 수 있으며, 연재가 규칙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언제든 연구가 중간에 끊길 수 있다. 2) 필자는 증산교를 비롯한 종교들을 증오하지도 않고, 찬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증산계 종교는 연구대상일 뿐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증산교는 하나의 문화현상일 뿐이며, 1970년대 박 정권 이래 강성하여 꽤 많은 사회운동을 물밑에서 작업해온 집단으로 인식된다. 현재 글을 쓰는 필자의 입장에서 증산교는 민족의 구원, 즉 .. 2020. 12. 14.
삼국의 정치적 발전 [삼국과 가야의 발전(7) - 삼국의 정치적 발전] * 삼국의 정치적 발전 앞서 조금씩 다루어왔듯이, 고구려와 백제는 4~5세기 사이에 계속 서로 투닥거렸습니다. 4세기에는 백제에 근초고왕이라는 왕이 있었고, 4세기 말부터 5세기까지는 고구려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한반도와 만주벌판에서 크게 위세를 떨쳤죠. 그리고 6세기에는 신라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삼국 각각의 발전상을 찬찬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2020. 12. 13.
삼국의 고분 양식에 대하여 [삼국과 가야의 발전(6) - 삼국의 고분 양식에 대하여] * 삼국의 고분 양식 각 나라의 무덤 양식은 해당 나라의 문화를 알려주는 주요 단서입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그저 시신을 묻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귀하게 여기고 있는 물품까지도 함께 무덤에 넣어놓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덤 모양은 왜 이렇게 만들었고, 왜 이런 물건들을 넣어놓았는지 당시 사람들이 굳이 언어로 기록을 남겨두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조상님들 묘지가 왜 그런 모양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무덤만큼은 참으로 그 당시로서는 당연한 전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지금 그나마 남아있는 거대한 무덤들은 당시 유력한 이들의 무덤일텐데, 그렇다면 그 당시에 향유하고 있던 문화의 양상을 무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2020. 12. 10.
4세기 이전 금관가야(구야국) 주도의 변한 [삼국과 가야의 발전(5) - 4세기 이전 금관가야(구야국) 주도의 변한] * 전기 가야 연맹 한반도 중부에서 남부까지 위치한 마한-진한-변한이 삼한이라고 했지요. 삼한지역에 마한은 목지국을 중심으로 강성하고 있다가, 기원전 1세기에 마한에 백제국이 들어서서 목지국의 주도권을 빼앗아오게 된다고 했지요. 그리고 진한과 변한은 서로 경쟁하면서 교류를 하고 있었지요. 그 중에 4세기에 한사군 낙랑군 등이 제거되고, 무역 파트너를 잃은 변한 지역은 위기를 겪게 되고 여러 소국들이 변한 구야국(금관가야)을 침략했던 '포상팔국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그 틈에 진한에 사로국이 신라의 전신으로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과정 속에서 변한의 사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낙랑군이 축출된 4세기.. 2020. 12. 9.
신라 초기의 발전상 [삼국과 가야의 발전(4) - 신라] 신라는 동해안의 진한에서 나왔다고 했지요. 신라의 기원은 진한 소국 중 하나인 경주 지역의 사로국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씨, 석씨, 김씨 3개 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사로국은 변한 지역에서 김해지역 구야국(금관가야)과 교류 및 경쟁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었죠. 금관가야(구야국)은 일본과 교류했고, 평양 지역에서 한나라 군현으로서 처음 출범하여 이어져왔던 낙랑군과 무역을 하면서 먹고 살았죠. 한편 마한에서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은 그런 상황 속에서 구야국을 그리 앞서나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극적인 전환점으로, 3세기 후반부터 시들시들해지던 이 한군현 낙랑군, 대방군이 마침내 4세기에 백제나 고구려의 압박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변.. 2020. 12. 6.
백제 초기의 발전상 [삼국과 가야의 발전(3) - 백제] 1. 기원전 18년 온조왕의 건국 : 앞서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왔다고 했지요? 고구려에서 또 다시 주몽의 아들 온조가 이끄는 세력이 다시 한반도 중부로 내려옵니다. 바로 온조가 마한 지역에 내려가 나라를 건국하게 되는데, 그 때가 기원전 18년이었던 것이죠.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마한에는 목지국이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죠. 이 나라는 그에 비해 미약한 한강 유역(위례성)의 세력이었는데, 이 백제국이 점차 강성해져 마한을 통일해 나가게 되지요. 이 나라의 이름이 열 십자를 써서 '십제'였는데, 유민을 받아들이면서 백제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고, '백제국'이 따로 있어서 그것이 큰 것이 백제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이 영역은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협업으로 아직 논의.. 2020. 12. 3.
고구려 초기의 발전상 [삼국과 가야의 발전(2) - 고구려] 1. 1~2세기 제6대 태조왕 : 고구려의 시조는 기원전 37년~기원전 19년 사이에 재위했던 동명성왕, 즉 주몽입니다. 그런데 통상 태조라고 함은 왕조의 개창자를 의미하는데, 고구려 주몽은 동명성왕이고, 태조왕은 53~146년에 재위했다고 전해지는 다른 사람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애초에 동명성왕이 추대되었던 그 부족이 아닌 다른 부족이 새로 왕을 배출한 것이 태조왕인 것인지, 고주몽의 계루부라는 부족집단 고씨의 방계 집안에서 태조왕이 새로 왕위에 등극해서 그런 것인지, 여러 설이 있습니다. 어쨌건 태조왕은 전쟁도 하고 확장도 활발히 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옥저가 고구려에 많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지요. .. 2020. 12. 1.
초기 삼국의 형성 과정과 왕권강화에 대하여 [삼국과 가야의 발전(1) - 왕권강화와 삼국의 형성 과정에 대하여] 1. 삼국의 성립 이전 시간까지만 해도 각 나라는 부족장들이 계속해서 왕을 쥐고 흔드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왕은 그저 외교나 전쟁을 할 때에 그 부족연맹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었지요. 그런 상태에서는 언제든지 부족이 떨어져나가거나,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점점 왕의 권한이 강해지게 됩니다. 왕권이 강해지면 부족들은 힘을 못 쓰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단 왕 아래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왕의 부하가 된 것은 아니죠. 나름대로 귀한 혈통으로서, 자기 동네에서는 나름 권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귀족'이 됩니다. 왕은 그 정도에서 만족할 리가 없습니다. 귀족이 국가를 운영.. 2020. 12. 1.
고구려의 제도와 풍습 [4. 고대국가의 형성 - '제도'에 대하여(5)] 4. 고구려 고구려는 사실 만주 북쪽에 부여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고구려의 시조는 동명성왕, 즉 주몽인데, 주몽이 부여에서 성장했다가 나중에 나와 고구려를 세웠다고 주몽신화에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부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내려왔는지는 알 수 없기도 하고, 고고학적으로 완벽히 증명이 되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다만, 주몽신화가 고구려에서 생산된 다양한 자료들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사람들에게 주몽신화는 꽤 당연한 것 같습니다. 다만, 고구려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는 확실히 부여를 계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를 운영해 나갔는지를 살펴보는 게 이번 시간의 핵심이겠죠. 고구려도 처음에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2020. 11. 29.
삼한의 제도와 풍습 [4. 고대국가의 형성 - '제도'에 대하여(4)] 3. 삼한 좌측부터 마한-변한-진한, 즉 삼한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전형적인 모습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 개의 공동체들은 각각 여러 소국들이 모여 형성한 것들이고, 각각 오늘날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이었는지는 명확히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추측되기를 청동기 문화를 향유하던 한반도 원주민에 더해, 북쪽에서 여러 난리들이 있을 때 마다 철기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한반도 중~남부의 삼한으로 내려온 것이죠. 이 삼한 내에도 읍락, 고을 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읍락, 고을 중에도 중심이 되는 세력이 있겠죠? 그리고 각 소국마다 중심 고을에 사는 우두머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우두머리의 이름은 '신지',.. 2020. 11. 28.
옥저, 동예의 상황과 풍습 [4. 고대국가의 형성 - '제도'에 대하여(3)] 2. 옥저와 동예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망했다고 했죠? 고조선은 그렇게 기원전 2세기 말까지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창 고조선 사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기원전 4세기에 예맥(濊貊)이라는 사람들이 압록강 중류에 살고 있었습니다. 압록강은 한반도 북서쪽에 있는 강이죠? 이 예맥이라는 이들이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인구 28만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중국에서 백만 대군이 어떻다 그러지만, 28만 명이라는 숫자도 많은 것이죠? 예맥 사람들은 압록강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많이들 이주했습니다. 예맥의 부족들 일부는 서쪽의 요동 지역에 편입이 되었고, 어떤 부족들은 한반도 동해안 지역으로 계속해서 이주했을 것입.. 2020. 11. 28.
부여의 생활 모습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고등학교 한국사 시험 대비 : '제도'에 대하여 24. 고대국가의 형성 - '제도'에 대하여(2) 이번 시간에는 고대국가의 성장 양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제도의 배경에 대해 이해를 시도해야 한다고 이전 시간에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고대사라는 것이 사료가 그렇게 막대하게 많은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고대사를 전공하시는 선생님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대부분의 사료들이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근현대사를 연구 하시는 선생님들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고로 고대사는 외울 것이 교과서에서도 그리 많지는 않은 편입니다.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중심으로 머릿속에 집어넣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 상상해보는 작업을 해보도록 합시다. 1. 부여 : 만주가.. 2020. 11. 27.
전근대 한국사, 야만적이라고? 4. 고대국가의 형성 - '제도'에 대하여(1) 이번 시간에는 '이해'와 '평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과거의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봅니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이해'란 사건의 이유, 원인,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편 '평가'는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래요. 이 말은 즉 평가란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 도덕적인 판단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죠. '제도'란 무엇일까요? 제도라는 말을 떠올리면 참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제도'를 단순히 정의하라면 학자들의 토론이 이어지겠죠. 결혼제도, 가족제도 같은 것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한국적인 결혼제도, 한국적인 가족제도 같은 범위에서는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겠지요. 역사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특수한 .. 2020. 11. 26.
3. 고조선과 철기 유입 3. 고조선과 철기 유입 철기시대는 말 그대로 철이 등장한 시대입니다. 철이라는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어디선가 계속 사용되고 있었겠죠? 어떤 선생님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등장했을 때, 비로소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이 철기 시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해석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느냐의 문제이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대개 만주와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기원전 4~3세기 무렵에 중국 연나라에서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 때 철을 다루는 기술자들이 들어온 것이겠죠. 철 기술자가 생기니, 날쌔고 강한 강철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드라마 주몽의 모팔모가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강철검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철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은 세형 동검입니다. 아..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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